2013년 5월 3일 금요일

한심한 일기 6) 가난하면 심플해질 수 없다.

호더를 다룬 sbs스페셜 한 장면

가난한 나는 가진게 왜 이리 많습니까?

오늘 세보니 소쿠리만도 스무개가 넘습니다.

빨래 담는 큰 놈, 깍두기 담는 넓은 놈, 국수 건지는 쇠로 된 놈, 야채담는 씻는 빨간 놈, 잡동사니 담는 넓은 놈 좁은 놈, 긴 놈, 높은 놈. 혹시 언제 소용이 닿을 지 몰라서 챙겨 둔 더 많은 놈들. 한 녀석도 반듯한 놈 없이 오래 써서 물때, 먼지 때가 구석구석 꼬인 못난 놈들입니다.
가난하면 쉽게 버릴 수 없습니다. 그 언젠가 다시 한번 쓸 날을 위해 모셔두게 됩니다.

돈 없는 나는 왜 이리 짐이 무겁습니까?

한걸음 한걸음 콩크리트 바닥을 뚫고 내려갈 만큼 무거운 짐을 들고 걸었습니다. 된장 한통, 물 한병, 두부 두모, 굵은 파, 사과 몇쪽, 라면 5개 들이, 커피 믹스 한 통, 뭐 다 기억나지 않지만 참 인생 무겁게 삽니다.

젊은 시절 난 가난이 무섭지 않았습니다.
가난은 들판에 핀 풀꽃같은 거라고.... 바람에 휘날리고 부대껴도, 그게 바로 자유라고.
친구들이 모였다 하면 연봉 이야기 하고, 아파트 값 이야기하고 주식투자 이야기할때 겉으로는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속으로는 속물들이라 비웃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이들이 하던 말의 뜻을 알 것 같습니다.
가난하면 절대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그들은 영혼을 팔아 자유를 사고 있었던 걸까요?

딸아이가 말합니다.
"나도 창문있는 방에 살고싶어."
할 말을 잃습니다. 내가 창문도 없는 이 방을 위해 매일매일을 얼마나 죽도록 노력해야 하는지 아이가 이해하기에는 너무나 힘든 일일 겁니다.

가뜩이나 좁은 집에 소쿠리가 그득합니다.
낡은 가방이 그득합니다. 언젠가 그 가방을 들게 될 날이 올지도 모릅니다.
딱 그런 가방이 필요하게된 어느 순간에 나는 어쩌면 그 가방을 다시 살 능력이 없을지도 모르니 나는 그 가방을 소중하게 모셔둡니다.
10년 전에 입던 옷도 버릴 수 없습니다. 아직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 옷들을 버리려고 몇번을 망설이고 꺼내 입어봤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다시 고이 접어 넣습니다. 나는 가난합니다.

가난은 공간과의 전쟁입니다.
나는 언제가 될지 모르는 어느 순간들을 위해 내 낡은 물건들에게 자리를 내주고 조심스럽게 걸어다닙니다. 추억이라고 이름붙이면 위로가 될까요? 허나 내게 소쿠리나 일년에 한두번 쓰는 찜통에 대한 아련한 추억 따위는 없습니다. 가난은 자유가 아닙니다.

지금 함께 사는 사람과 헤어져야 타당했던 순간이 있었습니다.
그 사람이 다른 사람과 사랑에 빠졌더랬죠. 나는 라푼젤의 마녀가 되어 그 사람을 속박할 게 아니라 훨훨 떠나보내 주고 싶었습니다. 가슴이 찢어져도 딸아이가 지금 당장 불행해 진다 해도 자존심, 자유, 다른 사람의 인생에 장애가 되지 않겠다는 내 신념, 이런 것들을 아이에게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우리 두 사람은 헤어지지 않았습니다. 따로 방을 얻을 돈이 없었습니다.

드라마를 보면 헤어진 연인들은 유학을 가거나, 이사를 가거나 직장을 관둡니다. 그러나 가난한 사람들은 그냥 삽니다. 가난하면 심플할 수 없습니다. 이혼하려 했던 배우자와 수많은 소쿠리와 창있는 방에 살고싶은 딸과 함께 살아야 합니다. 살아야 합니다.

가난하면 심플해질 수도 자유로울 수도 없지만,
그게 내 삶의 목표는 아니니까요.
내 삶의 목표는 바로 내 삶이니까요.
그리고 내 이 비루하고 복잡스런 삶이 그리 드문 삶은 아니라는데 위로를 찾으며
오늘도 하루 하루 내 삶을 무겁게, 복잡하게 걸어갑니다.
무겁게 복잡하게 걸어갑니다.

한 손은 딸아이의 손을 잡아야 하니,
왼손으로 무거운 여섯개의 비닐 봉투를 모아 들고
바람 부는 길 30분을 걸은 어느 날의 일기였습니다.

허허

풀꽃 사진 출처 ; http://aqwerf.egloos.com/4358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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