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4월 9일 화요일

한심한 일기 4) 책속에 길을 잃다.


책장 살 돈이 있다면 그 돈으로 책을 더 사겠다던 아이가 있었다. 아이는 밥 먹을 때도 똥눌때도 잠이 눈까풀을 내리 누르는 그 순간까지 책을 읽었다. 책속에는 밥이 나오고 돈이 나오는 위대한 길이 있다고 철썩같이 믿던 부모는 책읽는 아이를 흐뭇하게 바라보곤했다.
하지만 아이가 읽는 책 속에는 길이 아니라 첩첩산중 가도가도 끝이 안보이는 망망 대해, 아직도 부지런히 커지고 있다는 저 하늘 우주, 사람과 사람사이의 답도 없는 전쟁, 마음 속의 거대한 미궁들이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아이는 결국 길을 찾지 못하고 책, 그 마법으로 가득차 끊임없는 물음표를 재생산하는 생각의 궁전에서 길을 잃었다. 
이제 책장을 사줄 부모도 책을 살 돈도 모두 사라진 다음에야 아이는 책에서 고개를 들어 눈부신 세상을 본다. 아이는 처음으로 세상을 향해 걸어가려 하지만 이미 아이는 늙고 노쇠해져 있다. 이미 침침해진 눈을 꿈뻑이며 아이는 밥을 구할 방법을 찾아 떠난다. 모든 것이 낯설다. 세상은 책처럼 운명적이지도 인과가 분명하지도 않다. 모든 것이 느닷없고 뜬금없다. 아이는 다시 책을 집어 든다. 자신이 살았던 세상으로 돌아간다. 활자로된 밥을 먹고 활자로 된 사랑을 하고 활자로 된 꿈을 꾼다. 아이는 책 속의 익숙한 길을 따라 영원한 길을 떠나고 있다. 안녕, 모두들 안녕.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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