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4월 26일 금요일

TV와 교신하다) 보다보면 기분 나쁜 [직장의 신]과 [돈의 화신]
























엄마는 이 드라마를 좋아하신다. 그리고 내게 이렇게 말씀하신다.

"봐라. 지가 실력만 있으면 아무리 세상이 그렇다고 해도 저렇게 지 할말 다 하고 퇴근시간 딱딱 챙기면서 돈도 잘 벌고 안 그러나. 회사에서 정직원 되달라고 부탁까지 안하나 말이다. 기술없는 백정이 칼탓 한다고 지 능력없고 노력도 안하는 것들이 꼭 사회탓하고 불평 불만이 많은기라."

... 엄마, 저건 날아다니지만 않았지 수퍼맨이잖아. 판타지 코믹 SF랑 현실을 구분하라고요. 

회사 경영자는 이렇게 말하겠지.

"불만 있으면 실력을 키우던가, 인 서울 좋은 대학 다시 입학해서 정직원으로 입사하던가, 이도 저도 못하면서 자존심 나불거리지 말고 찍소리 말고 시키는 일이나 하시지. 너 아니래도 계약직도 넙쭉 절하면서 들어올 애들이 천지에 널렸거든."

....네, 아닙니다. 불만 없습니다이 개새끼야... 어찌 그리 맞는 말씀만 하십니까이 X같은 새꺄.
(굽신굽신)

직장의 신이라는 이 드라마는 내 편인 듯 하다가 왜 이리도 나를 비참하게 하는지. 마치, 계약직 사원들의 문제는 그저 개인 능력의 문제라는 듯한 분위기를 풍기고, 3개월마다 화끈하게 그만두는  김혜수가 정말 매력적으로 보이게 만든다. 부양가족이 있는 어느 집 가장에게, 혹은 어디 한곳 비비적 거릴 곳 없는 고독한 현대인에게 내 자신을 인간답게 살아가도록 밥줄이 되어주는 직장을 박차고 나가는 것이 어떻게 쿨할 수 있단 말인가.

그래서 내린 결론은 직장의 신은 정직원과 경영자 그리고 자본가들을 위한 드라마라는 것이다. 계약된 금액만 지불하면 회사내 잡무라는 잡무는 모두 해결하고, 인간관계나 인간에 대한 존중을 요구하지 않으며 모든 불평등을 자기 능력탓으로 돌리고 때가되면 인사담당자에게 스트레스 주지 않고 화끈하게 떠나 주는 그런 계약직 사원의 이상형을 제시하는 것이다. 

오랜만에 만난 재미난 드라마가 나를 씁쓸하게 한 [직장의 신]이라면,

보자보자 하니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히던 드라마가 바로 [돈의 화신]이었다.


돈의 화신을 짧게 요약하자면 억울하게 부모를 잃고 힘들게 살아온 한 청년이 부모의 원수에게 처절하게 복수하고 마침내 행복을 찾게된다는 속시원하고 통쾌한 권선징악 스토리였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참 좋아하는 스타일의 이야기다.

답답한 서민들의 속을 시원하게 풀어주는 통쾌한 복수드라마 [돈의 화신]

비상한 머리를 써서 기상천외하게 복수를 진행시켜나가는 주인공 역할을 맡은 강지환은 코믹과 진지를 한큐에 넘나들며 자칫 무거워질 수 있는 이 드라마를 역동하게 만드는 보배였고, 악당역할을 한 박상민은 참 선한 얼굴과 믿음직한 얼굴, 그리고 무서운 악당의 얼굴을 오가며 의외의 호연을 보여줬다. (사실 박상민은 데뷔 [장군의 아들]에서부터 항상 호연을 보여왔는데, 항상 내게 의외라는 느낌을 준다. 왠지 연기 못하고 무식할 것 같은 선입견이 떠나질 않는다. 죄송)

얽히고 설킨 원한 관계만큼이나 얽히고 설킨 복수의 과정을 선 굵게 그리고 이해하기 쉽게 디자인하고 연출한 작가와 연출가의 능력도 아주 돋보이는 작품이었다. 한마디로 말해서 참 재미있었다. 그런데 말이다.

"그런데 말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이런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왜 하필 사체업자인가."

내가 과연 이 드라마에 박수나 치고 있을 상황인가? 자본가를 위한 [돈의 화신]

어딘가 불편한 느낌이 자꾸 마음을 어른거렸는데...
그건 뭘까, 뭘까 곰곰히 생각해봤는데, 논리적인 순서랑의 전혀 관계 없이, 김수미가 떠올랐다.

김수미... 정관계에 엄청난 돈을 마구 빌려주는 사체업계의 큰손.
그녀가 먹여둔 돈 덕분에 한때 진짜 비리검사로 자격박탈을 당했던 강지환이 마지막 복수의 순간에 검사가 되어 화려하게 부활한다. 철전치 원수 박상민을 검거하는 클라이막스를 보여주기 위해서 말이다. 그렇다. 돈의 화신에서 주인공들은 바로... 지독한 사체업자와 그에 의해 키워진 비리검사였던 것이다.

우리편 ; 사체업자와 비리검사. 그 사람들이 이 드라마의 주인공이었던 것이다.
그게 날 정말 불편하게 했다. 지금도 수 많은 사람들이 악덕 사체업자들에게 잘못 걸려 자살을 하고 가정이 풍비박산이 난다. [그것이 알고싶다]나 [당신이 알고싶은 이야기 Y]에서 정말 많이 봐왔던 직업이다. 게다가 강지환이 그토록 소중하게 여기는 자기 아버지는 명동 땅부자다. 지금도 서민들이 발 뻗고 잘 곳이 없어 설움에 잠겨 살도록, 서울 땅값을 천정부지로 밀어 올린 바로 그 투기꾼이었다. 내가 알기로 이런 사람들은 참 나쁜 사람들이다. 내가 생각하기에 검은 돈으로 정계와 재계를 좌지우지하는 김수미(복화술)과 비리검사 강지환은 다시 부자가 되고 다시 검사가 되고, 자신의 부를 다시 쌓아올려서는 안될 사람들이다. 

나쁜년놈들 ; 영화배우 출신 사업가, 기자, 로펌사장, 현직검사(서민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는 시장후보).

이 드라마를 보면서 난 너무 형편이 어렵게 살았던 애들은 멀리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나처럼 서민으로 살다가 검사, 시장후보 등이 되면 서민들을 도와주는게 아니라 자기가 당했던 것 그대로 가난한 사람들을 괴롭히고 돈에 환장해서 비리를 더 저지르겠구나. 그런 느낌이 들었다.

우리는 어떤 면에서 이런 생각들을 하고살지 않는가. '아무래도 사람은 돈 좀 있는 집에서 호강하고 세상 걱정 없이 큰 사람들이 더 순수하고 해맑은 면이 있지. 없이 자란 애들은 좀 어둡고 무서워.' [돈의 화신]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없는 것들을 걷어주고 가까이 두면 꼭 해를 입힌다. 머리 검은 것들은 절대 걷어주면 안돼. 은혜를 원수로 갚는다니까.'라는 확신이 들게 한다.

[돈의 화신]은 우리가 믿을 구석을 모두 산산히 파괴시킨다. 대쪽같은 검사. 사회의 비리와 부정을 고발하는 기자. 드라마에서 우리 삶의 지향점을 연기하는 연기자들. 사회 밑바닥에서 시작해 자수성가하고 서민들을 대변해서 정치를 하겠다는 신흥 정치인들. 그들이 사실은 쓰레기같은 놈들이라고. 그런 이미지를 우리 무의식 저 편에 깊이 각인시킨다. 참 무서운 부작용이다.

물론 나도 알고 있다.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 흥분하지 말자.
이러쿵 저러쿵 떠들지 말고 아예 보지를 마라.
이거 피하고 저거 피하면 그럼 막장 불륜 가정사 드라마만 주구장창 만들란 말인가?
이만큼이나마 만든게 어디냐? 너나 그렇게 생각하지 아무도 그렇게 생각 안한다.
뭐 그럴 수 있다. 하지만 말이다. 우리는 이런 드라마를 반복해서 보고있다.

모두 기억할 지 모르겠다. [추적자].


가난한 이발사의 아들로 태어나 갖은 고생끝에 대통령에 출마했던
바로 그  것이 알고싶던 바로 그 사람

[추적자]는 닥치고 좋은 드라마였다.
하지만 나는 아직도 [추적자]의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다.
"우리는 대기업을 결코 이길 수 없다. 대통령 열심히 뽑아봐야 대통령은 파리목숨에 거대 재벌기업의 얼굴마담일 뿐이다. 그리고 가난한 이발사의 아들로 태어나 가슴에 칼을 품고 성공을 위해 내달린 사람은 결국 그 칼을 가난한 서민들을 향해 휘두르게 될 지도 모른다."
이 드라마는 너무나 잘 만든 드라마였기에 내 가슴 속에 더욱 큰 메시지를 확고하게 심어 놓았다. "우리는 결코 그들을 이길 수 없다. 그리고 우리의 적은 바로 우리다." 


참 무서운 메시지다. 패배주의에서 벗어날 수 없게 만든다. 나는 첨 추적자를 볼때, 이렇게 민감한 시국에 어떻게 저런 드라마를 만들고 방송을 할 수 있었을까, 내심 놀라고 작가와 연출자의 안위마저 걱정하곤 했었다. 하지만 방송은 무사하게 끝났고, 별 탈 없었다.
왜일까? 드라마가 기획되고 자본을 끌어모으고 공중파에 편성되기까지는 수많은 자본가와 권력자의 매같은 감시의 눈을 지나게 된다. 원래 그렇다. 방송의 속성상 피할 수 없는 과정이다. 그 과정을 거친 작품을 우리가 보게 되는 것이다. 그래도 드라마는 그저 드라마일 뿐일까? 혹시 누군가의 숨겨진 의도와 무의식적 교육의 요소가 포함되어 있는 것은 아닐까? 우리는 의심해야 하지 않을까?

요즘 TV 드라마를 보는 것은 대부분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이다.
가난한 사람이 아니면 누가 요즘 드라마를 보나. 해외여행가고, 골프치러 가고, 쇼핑가고, 와인마시러 가고, 파티하러 나돌아다니지 드라마 나부랭이 보며 몸을 삭히고 주저않아있지 않는다.

어쩌면 우리는(우리 가난하고, 늙고, 힘없는, 투표권 하나 거머쥔 찐따들 말이다.) 우리를 위해 맞춤 처방된 드라마나 방송을 보고 있는건 아닌지 모르겠다. 주는 먹이 넙죽넙죽 받아먹지 말고 안에 낚시 바늘 혹시 들어있지 않은지 살펴보자고 하고 싶지만... 난 너무 무능력하고, 하루하루 걸어야 하는 거리가 너무 멀고, 어깨에 짊어진 짐이 너무 무거워 그저 입을 벌리고 떠먹여 주는 달콤한 드라마들을 꿀꺽 꿀꺽 받아 삼킨다. 
오늘도, 내일도, 아마도 내 평생이겠지....  



2013년 4월 12일 금요일

한심한 일기5) 우리도 한 땐 소중한 사람이었다.

Photographer Choi Min - shik
나는 소 중하다.  얼마나 소중하냐면, 
나는 원래... 배 고파서는 안되고,  몸 아파서는 안되고  
혼자 슬퍼서도 안될 사람이다.

Photographer Choi Min - shik
내가  비록 못느낀다고 해도...
아무도 내게  걱정도 ... 위로도 ...사랑도 
주지 않는다 해도...

Photographer Choi Min - shik
쓰러진 그대로 누워 쉬는 게으른 놈이라 해도
쫒겨난 그대로 바람 쐬는 배알 없는 놈이라 해도
외면당한 그대로 먼산만 보는 용기없는 놈이라해도

나는 결코 포기한 게 아니다.
네 눈에 내가 쓰레기처럼 보일지라도
나는 한때 누군가에겐 소중한 사람이었고

지금도... 
아니 앞으로도 영원히

Photographer Choi Min - shik
나에게는 유일한 희망이다.
그게 바로 나다.
그게 바로 너다.








신화의 이상한 매력 1) 이메일 아이디 정하기와 나의 신화적 정체성


내가 과연 단군의 자손일까?

요즘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난 어렸을때 우리나라 사람들은 모두 단군의 자손이라고 배웠다. 우리 모두 아버지의 아버지의 아버지의 또 그 아버지에게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단군이라는 한 인물을 만나게 된다는 것이다.  단군은 고조선이라는 나라를 건국했고 그 나라의 왕이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난 왕실의 피를 물려받은 것 같지는 않다.  내 조상은 단군이 내려와 나라를 만들때, 원래 그 동네에 살던 무지렁뱅이였을 것 같다.  나라를 건국하고, 큰 일을 도모하는 건 나랑 도무지 잘 맞지 않는 일이다. 그럼 난 단군의 자손이 아니라 단군의 백성의 자손인 거고, 그걸 다시 표현하면 단군세력의 피지배층이었던 사람의 자손인거다. 대대손손 아주 잘나가는 사람들 밑에서 눈치나보며 하루하루 생명을 연장시켜나가는 작고 작은 평범한 백성. 

왜 나는 단군에게 정이 가지?

아무리 생각해도 우리 집안 사람들은 털이 별로 없고 가늘가늘하게 생겨서 단군집안이랑은 아주 거리가 먼 듯 한데, 왜 나는 단군신화를 들으면 참 내이야기 같고 가슴이 설레고 그러는 걸까? 참 넓기도 한 오지랍이다. 온 세계의 신화를 다 읽어봐도 개인의 영달을  위해 싸운 영웅들 투성이고, 간혹 자기가 속한 집단의 이익을 위해 노력하는 영웅이라도 [홍익인간]같이 참으로 아름다운 정치철학을 선언한 신화는 읽은 적이 없다. 그래서 난 단군 신화가 나랑 상관있는 신화이기를 내심 바라고 있는 것인지 모른다.  

홍익인간,  그 평화의  철학이 성공한 유일한 사례

좀 오래된 자료긴 하지만 잠시 아래 자료를 살펴보자. 우리가 세계 10강에 들어간다는 중국의 분석이 담긴 자료다.  

2006년 1월 5일 중국사회과학원 발표자료

이 자료를 보면서 난 참 한국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나라들 중에 한번도 다른 나라를 식민지로 삼아 다른 나라의 자원을 훔쳐오지 않고 성장한 나라가 있는가?  중국과 인도, 러시아는 그렇게 덩치가 큰 나라를 경영한다는 것 자체가 정체성이 다른 주변국을 식민지로 삼아왔다는 뜻이다. 캐나다는 당연히 북아메리카 선주민들의 자원을 도둑질한 것이고 말이다. 뭐, 역사발전의 흐름에서 다른 나라를 침범하는 일이 옳다 그르다 한번도 안했다, 그런 적이 없다. 혹은 신라가 백제와 고구려를 멸망시킨것도 식민지배아니냐 하면 할말이 없다. 그런데, 저 위의 나라들 중에 우리나라가 주벽국에 대해 가장 덜 호전적이고, 가장 작은 국토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은 확실하다. 그래서 난 우리민족이 홍익인간, 그 평화의 철학이 우리 마음 속에 변함 없이 남아있다고 느끼는 것이다.

우리는 남의 것을 빼앗으려 도박하지 않았던 민족, 그냥 우리끼리 살기도 너무 바쁜 사람들이다.  남의 나라 것을 도둑질해오지 않고 이만큼 성장한 나라는 우리나라 밖에 없다고 난 생각한다.  참 작고 예쁘고 멋진 나라인 것 같다.

그래, 난 단군의 자손 할래. 멋지니까.

혈통이나 계통적으로 아무리 의문점이 남는다 해도 철학적으로 내가 그들의 후손이라고 생각되고 그렇게 믿고싶다면 나는 단군의 자손이 맞을 것이다. 아니 단군의 자손이라고 말할 수 있는 권리와 정당성을 갖는다. 그 권리와 정당성은 사실 [궁민학교]시절 선생님들이 참 열심히 불어넣어 주셨던 민족적 자긍심의 결과다.   정서적으로 정이가고, 지역적으로 일치하며, 혈통적으로 근접해있고, 철학적으로 공감한다면 나는 이제 훌륭한 민족주의자가 될 수 있는 기회를 만나게 된다. (민족주의자는 호의호식하진 못하지만 역사적으로 봤을때 오랫동안 칭찬받는다. 백범 김구,  단재 신채호,  민족주의자였는지는 모르지만 우리 민족을 위해 공을 세웠던 이순신장군, 세종대왕처럼 말이다.) 

그런데, 단군은 남자잖아.

누군가는 자신의 정체성과  삶의 지향을 표현하기 위해 사용하는 캐릭터가 본인과 다른 성을 가지고 있다는 점은 어떻게 보면 전혀 문제되지 않는다고 할 수도 있을 거다. 요즘처럼 타고난 성을 마음껏 넘나드는 시대에, 민족과, 국가 지역적으로 그리고 성적으로 나와 직접적인 관련성을 찾으려 애쓴다는 것이 웃기는 일일 수도 있다. 이건, 마치 내가 피라미드에 관광을 갔는데 이집트 애가  '어? 이집트 사람도 아닌 니가 뭘 이리 큰 돈을 들여서 피라미드에는 웬일이야?" 이런 반응을 보이는 것과 비슷하다고 할까?
그런데, 나랑 닮은, 혹은 관련있는 무엇인가를 내 삶의 기치로 삶는다는 건 참 중요하다는 사실을 나는 절절하게 깨닫고 있다. 왜냐면 이메일 때문에.

삶의 지향점. 나의 정체성. 온라인 세상에서의 아이디 정하기.

한때 내 이메일 아이디는 북아프리카에 있는 모로코라는 나라 이름이 들어간 것이었다. 세계 각국의 독특한 건축, 인테리어 문화를 보여주는 책을 읽었는데, 그때 모로코 스타일에 흠뻑 빠져서 모로코가 들어가는 이메일과 스카이프 아이디를 갖게 되었다. 나는 모로코라는 나라의 역사도 배경도 그 나라에 사는 사람의 민족적 종교적 특징도 알지 못하지만 그냥 그 나라 집들의 특징이 나의 정서를 심하게 건드렸기에 나는 모로코를 좋아한다고 말하게 되었고 내 닉네임, 혹은 아이디로 사용하게 되었다. 그런데 그때부터 내 스카이프에는 각종 아랍글자로 혹은 압둘, 흐즈크 뭐시가 들어가는 낮선 이름의 남자들이 보내는 메시지로 불이나기 시작했다. 그들이 왜 내게 접속해 오는지 잘 모르겠지만, 아마 나라를 사랑하는 동포를 만난 기분이 아닐까 싶다. 왜 우리도 80년대 까지는 외국에서 태극기만 보면 눈물이 울컥 나던 시절이 있지 않았나.  

인터넷 세상의 내 분신 ; 아이디를 정할 때는 훌륭하거나 매력적이거나 본질적으로 나 자신이거나...

나는 명함을 받아들면 그 사람의 이메일 아이디를 먼저 본다. 이 사람의 관심사는 어떤 것인가? 허세가 많은가. 노골적인가. 장난스러운가. 혹은 자기 이름 이니셜 뒤에 태어난 년도 두자리를 넣는 그런 스타일인가. 다른 사람이 기억하기 좋게 만드는 가, 아니면 스펨메일 깨나 보냈을 듯한 무의미한 글자들의 나열인가. 그래서 난 내 아이디 정하기가 정말 어려웠다.  나는 누구인가. 각종 광고메일과 옛날애인의 찔러보기 편지등으로 오염될 만큼 오염된 내 과거를 덮고 새 인생을 살기 위해 새로운 매일을 사용하려 결심했을때. 나는 이 거대한 질문과 마주하게 되었다. 

나는 누구인가. 앞으로 어떻게 살고 싶은가? 내가 꿈꾸는 최고의 가치는 무엇인가? 나는 어떤 사람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지고 싶은가? 그리고 그걸 한 마디로 줄여서 뭐라고 부르면 된단 말인가!

사실 신화속에서 내 정체성을 찾는 것의 발단은 새 이메일의 아이디를 정하면서 시작되었다. 유치하지 않고 흔하지 않고 오랫동안 그 의미를 곱씹어 볼 수 있는, 그래서 내 인생의 가치와 철학을 표현할 수 있는 어떤 이름을 내 아이디로 정하고 싶어서 신화 공부를 시작하게 되었다. 그래서 한때는 수메르 신화의 지혜의 신 [엔키]가 들어가는 아이디를 쓰기도 했고, 참 불쌍하고 안타까운 악당인 북유럽 신화의 [로키]를 쓰기도 했다. 내가 원래 아름다움이나 다산과는 거리가 아주 멀어 여신 중에는 그다지 쓸만한 아이디를 찾지를 못했다. 이시스는 너무 흔하고, 시바의 여왕은 주로 아프리카계 여성들이 사용하고, 그리스 로마 신화의 여신들 이름은 거의 모두 다 선택의 여지가 없이 사용되고 있고, 그래서 내가 찾은게 뭐였냐면...


(내가 찾은 이름이 뭐였는지는 다음 글에서 계속.)


2013년 4월 11일 목요일

아, 잘생겼다. 드라마 [나인] 주인공 이진욱.





[로맨스가 필요해 2]에서도 그렇고, 이번 [나인]에서도 그렇고, 내가 넋을 놓고 보게 하는 마스크를 가졌다.  너무 믿음직해서 그냥 그 옆에 있으면 벼락도 피해갈 것 같은 느낌이랄까... 참 좋다. 뭐 이 블로그 방문하는 사람도 별로 없으니, 기분 꿀꿀해지면 보게 여기다 꽁꽁 숨겨놔야지. ㅋㅋ

첫 사진 한장은 개인 소장용(급성 로맨스 결핍증이 도질 시 응급치료용)으로 
여기 한적한 블로그에 짱박아둔 사진입니다. 
그런데 너무 많은 분들이 [이진욱] 이름 석자  때문에 낚시 당하셔서  
미안한 마음에  사진 써비스 좀 올려봅니다.

연예인 사진 도배는 처음이라...
사진이 들쭉날쭉 합니다.
양해 구합니다. 꾸벅

이진욱(李陳旭, 1981년 9월 16일 ~ ) 배우

충청북도 충주 출생, 
출연 작품
<<드라마>>
2004년 MBC 《MBC 베스트극장 - 불량소녀》 ... 강재환 역
2005년 KBS2 《부활》 ... 스티븐 리 역
2006년 SBS 《연애시대》 ... 민현중 역
2006년 SBS 《스마일 어게인》 ... 윤재명 역
2006년 OCN 《썸데이》 ... 임석만 역
2007년 MBC 《에어시티》 ... 강하준 역
2008년 MBC 《비포 & 애프터 성형외과》 ... 한건수 역
2008년 KBS2《강적들》 ... 강수호 역
2008년 SBS 《유리의 성》 ... 김준성 역
2011년 KBS2 《스파이 명월》 ... 최류 역
2012년 tvN 《로맨스가 필요해 2012》 ... 윤석현 역
2013년 tvN 《나인: 아홉 번의 시간여행》 ... 박선우 역
<<영화>>
《나의 새 남자친구》허진호 감독의 단편영화, 29초영화제 초청작, 주연 윤진서와 이진욱
<<뮤직비디오>>
정재형《나 같은 사람이라면》: 이진욱 출연, 2002년


<뮤비 감상 한번 하시고...>


김동률 (With .이소은)《욕심쟁이》: 이진욱과 현영 출연, 2004
<<CF>>
파나소닉 면도기
현대 M카드
인터넷 메신저 버디버디: 2004년
KTF: 이진욱, 윤진서, 안성기, 2004년
던킨도너츠: 2005년
맥스웰 캔커피: 조인성의 친구 역, 2004년
박카스: 트로트에 맞춰 춤을 추는 효자 아들 역, 2004년
<<기타>>
패밀리가 떴다: 11회 2008-08-31, 12회 2008-09-07
<<수상>>
2006년 SBS 연기대상 뉴스타상
-이상 자료는 위키피디아에서 긁어옴-

아래는 구냥 주구장창 사진 감상.


이 머리는 안어울리니 다시는 하지 마시길.
이 오빠야는 이마를 확 까야 멋진것 같다.

컬러 렌즈라도 하시나... 눈동자가 어찌 저리 크고 맑은지...
오빠야~~~ 눈 마주치니 넘흐 설렌당~~
모자써도 예쁘지만

오빠야는 역쉬 마빡을 시원하게 까 주셔야


제 맛이네.

정장 잘 어울리는 남자 정말 좋아.


물론 벗은 모습도 좋지만서두...


그 중에서 정장 벗은 모습이 최고라네~~~! 쓰읍.. 침좀 닦고.

아~~ 심장뛰어. 난 기절.


2013년 4월 10일 수요일

명장면 명대사 1) 나는 과연 누구의 포주인가.



줄거리)
재즈 피아니스트인 프랭크 베이커와 잭 베이커 형제는 '전설적인 베이커 형제들' 이라는 이름의 듀오로 작은 클럽을 전전하고 있다. 형 프랭크가 낙천적인 성격을 지닌데 반해 뛰어난 재능을 지닌 잭은 음악인의 팽팽한 자존심으로 현실을 이겨나가고 있었는데. 15년동안 변함없는 모습으로 연주해온 그들에게 손님들의 관심은 차츰 멀어져가고, 궁여지책으로 그들은 관심을 끌기 위해 새로 여가수를 기용하려 한다. 그러나 오디션 결과는 별로 신통치 않다. 
그때 이들앞에 나타난 것이 매력적인 수지 다이아몬드. 수지의 합류로 베이커 형제의 밴드는 인기를 모으기 시작하는데, 잭과 수지사이에 연애감정이 생겨나면서 셋의 사이에는 미묘한 불협화음이 생겨난다. 밴드의 운명도 아울러 갈림길에 놓이는데...( from MOVIST)

우리나라에서는 [사랑의 행로]라는 기가 막힌 제목으로 개봉했던 영화다. 영화 포스터에서 미셸 파이퍼가 왠지 들뜬 표정으로 두 남자 사이에 끼어 있으니 아주 무슨 형제 사이에 낀 삼각관계가 팍팍 연상된다. 아주 야할 것 같은 상상과 함께 말이다. 뭐 그런 오해 때문에 앞서 감명깊게 본 사람들도 있겠지만 나는 안타깝게도 그런 오해 때문에 개봉 후 6년이나 지난 1995년에서야 비디오 대여점을 통해 빌려보게 되었다. 참.... 좋았다.  나처럼 음악 듣기를 돌같이 하는 사람에게도 데이브 그루신의 도시서정 뚝뚝 떨어지는 재즈음악은 정말 죽이는데...



이 음악은 영화 주인공인 잭의 테마다.
잭은 위의 줄거리에도 나와있는 것 처럼 천재적인 재능을 가진 피아니스트다. 그는 음악에 대한 열정이 있고, 자기 음악에 대한 욕심도 있다. 그런데 잭은 그가 꿈꾸는 음악을 할 수가 없다. 왜냐면, 자기 형 프랭크 때문이다. 사람 좋고 가장으로서 책임감도 강한 프랭크는 평범한 피아니스트, 아니 평범한 피아노 선생님 정도의 피아노 실력을 가지고 있어서 잭 없이 혼자서는 연주활동으로 돈을 벌 수가 없다.  그런데 이런 평범한 피아니스트인 프랭크가 자기 가족을 먹여살릴 수 있는 직업으로서 그리고 사랑하는 동생과 함께 있을 수 있다는 이유로 이 듀엣연주활동을 그만두고 싶어하지 않느다는게 문제다. 그냥 관두지 않는게 아니라 그 순간순간을 사랑하고 영원히 변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애쓴다. 형을 사랑하는 잭은 자기 꿈을 찾아 떠날 수도 없고, 형의 실력을 끌어 올려 자신이 원하는 곡들을 연주할 수도 없다. 그는 삶의 열정을 텅 비워버리고서 매사에 심드렁하게 하루하루를 갖다 버리는 심정으로 줄담배를 피며 노인들이나 좋아할 흘러간 팝송을 연주하며 살아 간다. 그러나 쇼비즈니스계가 항상 그렇듯 이 둘의 지겨운 연주를 반기는 손님은 점점 사라지고 변화를 꾀해야 할 때가 되었을때, 프랭크는 싼값에 여자 가수를 기용하기로 결정한다. 그리고 초라하고 기막힌 창고 오디션을 거친 끝에 가난한 콜걸 출신의 수지 다이아몬드가 나타난다. 미셸 파이퍼다. 콜걸이라는 밑바닥 인생을 살던 그녀는 자기 인생을 바꿔볼 작은 꿈을 품고 오디션에 지원했고, 그녀의 등장으로 잭, 프랭크 형제의 공연은 오랜만에 큰 인기 (그나마 클럽공연에 불과하지만)를 끌게 된다.
하지만 모두가 예상하듯이 수지와 잭은 서로에게 이끌리게 되고, 두 사람의 관계는 공연에 영향을 주게 된다. 오랜만에 안정된 수입을 올리게 된 프랭크는 불같이 화를 내며 잭에게 수지와의 관계를 끊으라고 강요한다. 참을 만큼 참았던 잭의 분노가 여기서 폭발한다. 비단 사랑 때문이 아니라, 지금까지 자신이 살지 못했던 자기 삶에 대한 분노와 절망이 한번에 터져 나온 것이다. 잭의 분노는 수지에게도 프랭크에게도 거칠게 날아간다. 여자와 형, 음악과 직업, 꿈과 책임감 사이에서 선택을 강요당하게 된 잭은 말다툼 끝에 수지에게 해서는 안될 욕을 하고 만다. 창녀라고. 이미 오디션에서도 콜걸이었다는 걸 숨기지 않았던 수지 였지만, 이제 사랑하게 된 잭에게서 그런 욕을 듣게된 수지의 상처는 너무나 컸다. 그때 수지는 울면서 잭에게 이렇게 말하고 떠난다. "적어도 나는, 내 형제가 포주는 아니었어."  음악에 대한 진짜 사랑을 숨기고 마음을 비운 채 연주를 하는 잭의 행동이 창녀와 다를 바 없고, 그 짓을 강요하는 건 네 형이라는 뜻이다. 참 정곡을 찌르는 대사였다.
이 형제의 싸움은 결국 잭이 "손가락만은 건드리지 말라"고 애원하는 프랭크의 손가락을 잡고 비틀어 부러트리고서야 끝이 난다. 사람들은 이제 각자 자신의 삶을 찾아 떠날 수 있다. 아무도 구속하지 않고. 아무도 그 누구의 포주짓을 하지 않은 관계가 된다. 이전의 관계는 파괴되지만, 서로에 대한 깊은 사랑은 변치 않기에 형제는 형제대로 연인은 연인대로 화해와 희망을 향해 한걸음 내 딛는 것으로 영화는 끝이 난다. 
그러니까 18년 전. 내가 처음 이 영화를 봤을때, 나는 누군가에 대한 사랑과 책임감이 나 자신을 창녀로 만들 수 있다는 생각에 충격을 받았다. 우리는 우리 꿈을 포기하고 누군가를 위해 살아간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아이를 위해, 가족을 위해, 부모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기 위해. 그럴때 내 공허한 노동, 몸을 팔고 영혼을 파는 내 창녀짓의 댓가는 포주들이 가져간다. 가족, 아이, 부모. 그 따듯한 소중한 사람들이 내 포주들인 것이다. 원망할 수는 없다. 하지만 난 그때 다짐했다. 적어도 절대 내가 누군가의 포주로 살아가지는 말자. 나를 먹여살리라고 다른 사람의 꿈을 짖밟지는 말자. 다른사람의 꿈과 자유를 갉아먹으며 살지는 말자고....

그런데 말이다. 18년이 지나 지금 생각해 보니...  결국에는 말이다. 나는 나라는 포주를 먹여 살리기 위해 또 영혼을 비우고 살아야만 했다. 그리고, 나는 이제 영혼을 팔든 몸을 팔든 상관하지 않는다. 꿈 따위는 참 배부른 소리다. 누가 내 영혼을 사 준다면, 그래서 내 가족이 행복할 수만 있다면 포주고 창녀고 나는 마다하지 않을 것 같다. 영화를 볼땐 잭의 입장에서 세상을 봤고, 서른 즈음이 되어서야 산전 수전 다 겪은 수지를 이해할 것만 같았다. 그리고 마흔이 되자 영원히 이해할 수 없을것 같았던 민폐 프랭크가 가슴 깊이 이해가 되기 시작한다. 프랭크라는 평범한 인물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마흔이라는 나이의 무게가 필요했나 보다. 그리고 이제서야 책임감과 재능을 모두 가진 잭을 난 아직 한번도 진심으로 이해하지 못했다는 걸 깨닫는다. 아마 그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내 평생을 바쳐도 모자랄 것만 같아 마음이 참 싸~하다.   


기억나는 사족들...
두 남자 영화배우가 제프브리지스와 보브리지스라는 건 모두 아실거고
둘이 진짜 형제라는 것도 아실거고
이 영화에서 아카데미 상을 탄건 보 브리지스라는 것도 아실거고
중간에 여자가 미셸 파이퍼라는 것도 아실거고...
이 영화에서 담배를 얼마나 맛나게 피워대는지...
그 시절 이 여인을 따라하느라 담배를 배워버린 처녀가 참 많았었다.
커다란 에스닉한 귀걸이를 달고서 욕을 입에 달고 다니던 아름답고 섹시하던 그녀.
욕도, 담배도 미셸파이퍼 정도가 아니면 멋질 수 없다는 걸 그녀들을 이제 깨달았을까?


형님 없는 틈을 타서 공연 스타일을 재멋대로 바꾸고 피아노 위에서 노래하는 장면.
이 장면은 이 영화에서 정말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장면인데... (미셸 파이퍼가 입은 저 드레스가 아주 빨간 색이다.)
언젠가 박경림이 박수홍과 이 장면을 패러디 한 이후로 추억이 좀 오염되어 버렸다. 빨간 드레스는 이제 꼴도 보기 싫어서 흑백사진으로 가져왔다. ㅋㅋ  


2013년 4월 9일 화요일

한심한 일기 4) 책속에 길을 잃다.


책장 살 돈이 있다면 그 돈으로 책을 더 사겠다던 아이가 있었다. 아이는 밥 먹을 때도 똥눌때도 잠이 눈까풀을 내리 누르는 그 순간까지 책을 읽었다. 책속에는 밥이 나오고 돈이 나오는 위대한 길이 있다고 철썩같이 믿던 부모는 책읽는 아이를 흐뭇하게 바라보곤했다.
하지만 아이가 읽는 책 속에는 길이 아니라 첩첩산중 가도가도 끝이 안보이는 망망 대해, 아직도 부지런히 커지고 있다는 저 하늘 우주, 사람과 사람사이의 답도 없는 전쟁, 마음 속의 거대한 미궁들이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아이는 결국 길을 찾지 못하고 책, 그 마법으로 가득차 끊임없는 물음표를 재생산하는 생각의 궁전에서 길을 잃었다. 
이제 책장을 사줄 부모도 책을 살 돈도 모두 사라진 다음에야 아이는 책에서 고개를 들어 눈부신 세상을 본다. 아이는 처음으로 세상을 향해 걸어가려 하지만 이미 아이는 늙고 노쇠해져 있다. 이미 침침해진 눈을 꿈뻑이며 아이는 밥을 구할 방법을 찾아 떠난다. 모든 것이 낯설다. 세상은 책처럼 운명적이지도 인과가 분명하지도 않다. 모든 것이 느닷없고 뜬금없다. 아이는 다시 책을 집어 든다. 자신이 살았던 세상으로 돌아간다. 활자로된 밥을 먹고 활자로 된 사랑을 하고 활자로 된 꿈을 꾼다. 아이는 책 속의 익숙한 길을 따라 영원한 길을 떠나고 있다. 안녕, 모두들 안녕. 안녕.

한심한 일기3) 저 밤의 불빛 중에 내 빛은 없구나...


하늘에서 제일 좋아하는 풍경은 별이고, 땅에서 제일 좋아하는 풍경은 야경이다. 그 중간즈음에서 제일 좋아하는 건 불꽃놀이고. 그 세 가지의 공통점은 뭐 하나도 내가 가질 수 없다는 점이다.

요즘 왠만한 사람들은 다들 그렇듯이 나도 도시에서 태어나서 도시의 불빛을 보면 마음이 울컥하며 그리움을 느낀다. 반겨주는 사람 하나 없어도 어린 시절의 기억이 날 반겨 주는 곳.

어릴적 달밝은 밤이면 우리 아버지는 이런 노래를 불렀다.
"고오~향이 그리히 워어도~ 못가느은 시이인세에~~~"
그럼 내가 듣다가 이렇게 물었다.
"아빠. 왜 못가는데? 가면 되자나"
"마, 금의 야행. 좋은 옷을 입고 밤길을 걸어봐야 무슨 즐거움이 있겠노. 금의 환향. 좋은 옷을 입고 고향에 가야 그게 최고로 즐겁제. 그런데 그노무 금의가 없다 아이가, 금의가. 좋은 옷을 차려 입을 때 까지 못가는 신세라 이말이다."
"아빠 좋은 옷 만차나. 입고 가자."
"좋은 옷 입고 고향가는게 왜 좋겠노. 뭐 고향사람들한테 늙은 엄마한테 자랑하러 가나? 그게 아이고, 좋은 옷 입은 만큼 양손에 노나 줄게 많으니까 좋은거 아이겠나?"
"그런기가? 아빠 나나줄 돈 엄나?"
"느그가 돈 잡아묵는 귀신들인데 내가 무신 돈이 있노!"

아부지랑 그런 이야기를 나눌때 난 단 한번도 내가 고향에 못갈 신세가 될 줄은 몰랐다.
그때 난 반짝이는 옷을 입고 양손 가득 선물을 들고 하늘의 별처럼 창문들이 반짝거리는 내 고향 아파트 촌으로 들어설 줄 알았다. 그럼 내가 아는 우리 동네 사람들이 모두 달려나오고, 나는 그들에게 물건들을 나눠줄줄 알았다.

후유~
엄마가 어제 전화했다.
"날씨도 추운데, 뜨신 옷은 있나?"
나는 마음을 다해 대답했다.
"내 걱정 말고 엄마나 돈 아끼지 말고 보일러좀 팍팍 틀어라."

가스비 한푼 못보내 주는 신세면서...
큰소리만 쳤다.
참... 슬픈 비영신.


한심한 일기 2) 당신은 어린아이입니다.



우리는 아직 어린아이 입니다. 인간이 아무리 열심히 연습해도 봄날씨에 익숙해질 기회는 100번도 채 되지 않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삶에 익숙해 집니까? 우리가 어떻게 사랑에, 이별에, 실망에, 그리고 실패에 익숙해 집니까? 소중한 것을 잃어버리는 아픔에, 그리고 갖고 싶은 것을 갖지 못하는 속상함에 어떻게 익숙해 지겠습니까? 우리는 익숙해질 수 없습니다. 그저 하루하루 나이를 먹으면서 소리내어 울지 않는 법을 배워갈 뿐이죠.
우리 마음속의 어린 아이는 매일매일 소리내 울고 있습니다. 나를 있는 그대로 사랑해 달라. 무용지물이고 아름답지 않은 나를 사랑해주고 보살펴 달라, 울고 있습니다. 어릴적 엄마 품에서 울던 그 모습 그대로 입니다. 그러나 이제 아무도 우리를 달래주지 않습니다. 우리 자신이 달래줘야 하는데, 우린 언젠가 부터 엄마같은 목소리로 내 어린 마음을 야단칩니다. 어린애도 아니고 왜 자꾸 칭얼거리는 거야! 귀찮아죽겠어 그냥. 콱!
밤 늦은 시간 온천1동 파출소에 가면 낡은 몸둥이에 갖힌 아기들이 많습니다. 세상을 한번 둘러보면 아기들 천지입니다. 화 잘 내는 어른들도 사실은 뭔가에 상처받고 속상해서 울부짖는 겁니다. 불쌍한 고아들입니다. 보듬고 사랑해줄 누군가가 필요한데, 아무도 그래 줄 사람이 없습니다.
그렇다고 아무에게나 오냐오냐 하란 말은 아니죠. 우리는 엄마가 아니라 모두가 어린아이 이니까요. 그래서 질서가 필요합니다. 미끄럼틀을 탈때 처럼, 밀치지 않기, 주먹질하지 않기, 순서대로 웃으면서 친절하게...는 개뿔. 어린애들 모아두면 금방 투닥투닥 울음보가 터집니다. 세상이 그냥 그렇습니다. 고칠 방법은 없습니다. 그저 나 혼자 날 토닥일 밖에...

한심한 내가 너무 부끄러워 도망치다가 넘어져서 완전 한심하다.

photo Choi Minshik
열심히 사는 사람들의 모습은 항상 나를 부끄럽게 한다. 그리고 그 부끄러운 마음 저 편에는 미안함이 함께 있다. 미안함... 그건 정말 나를 힘들게 한다. 우리 엄마. 언젠가는 자기 자식이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을거라고 믿어주던 우리 엄마는 어느덧 언젠가는 자기 자식이 지 밥벌이는 할 수 있지 않을까하는 작은 기대를 안고 살아간다. 나는 왜 이렇게 한심한 삶을 살게 되었을까?
아버지는 항상 말씀하셨다. 그렇게 할거면 차라리 다 때려 쳐! 하지만 아버지. 그 누구도 이 따위로 하고 싶은 사람은 없어요. 하다 보면 이따위가 되기도 하고 저 만큼 대단해 지기도 하는거예요. 아버지. 아이들은 모두 훌륭한 사람이 되고싶어해요. 하지만 모두가 훌륭한 사람이 성공한 사람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어서 아이들이 헷갈려 하는 거예요. 비록 지금 나는 훌륭한 사람도 성공한 사람도 되지 못했고, 아버지는 이 속터지는 내 모습을 이제 더이상 볼 수 없는 저 다른 세상분이 되어 계시지만, 난 아직도 아버지 앞에서 야단맞는 아이로 남아있는 것 같아요. 
아버지.. 미안해요. 난 아직도 한심해요.
그게 나예요. 난 나일 뿐인걸요.
아, 문득 아버지가 그립다.